줬으면 그만이지 - 김주완

넷플릭스에서 히트를 친 다큐가 있다. [ 어른 김장하 ] 이다.
이 다큐를 소개하는 글을 보면은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라고 표현을 하였다. 궁금해 이 책을 읽어보았다.
소개
'줬으면 그만이지'는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 이기도 하지만 허락받지 못한 취재기 이기도 하다.
김장하 선생은 본인의 정의로운 베풂을 여태 꽁꽁 숨겨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열 배 백 배 뻥튀기해 알리고도 남았을 텐데 선생은 그랬다. 이런 선생이 본인에 대한 취재를 허락했을 리가 만무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 알라딘
리뷰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멈춰서 생각에 잠기는 순간들이 많았다. 김장하 선생님의 삶이 지향하지만 쉽게 살 수 없는 삶의 모습이다 보니 그 무게가 가늠이 되지 않아 그러했다.
누군가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는 말보다 행동으로 말하는 것이 최고의 가르침인 것처럼 그분의 삶의 모습이 그러했다.
< 어른이란 무엇일까 >
나에게 어른이란 주어진 나이대에 따라 자기 몫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인과 같은 어른에 대해서는 논외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이에 내가 느끼는 욕망은 남의 것을 빼앗지 않는 선에는 드러내도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김장하 선생님의 삶을 통해 나의 태도를 한번 더 고민해 봐야 함을 깨닫는다.
그의 삶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이 닮아가기 위해 고민하며 더 나은 삶의 방향으로 전진하는 모습을 통해 스치는 생각으로 나에게도 저런 어른이 있었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상황에서 희생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을 볼 때 그에 반하는 나의 선택이 부끄러웠던 순간을 맞이한 기억이 있다. 그 속에서 나는 나의 태도를 고민할 기회를 얻었었다.
이 경험을 비춰 주변에 있었다면은 스스로 권리라며 나의 욕망을 앞세워 살아가는 삶 속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길을 비춰 이에 대한 반증으로 그분의 행동을 보며 나는 고민 속에서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에게도 나도 어른이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변사람들이 칭송하는 성인이 되지 못하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 조카나 동생들에게 좋은 어른의 모습이 되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거 같다. 내가 발전하는 방향은 내 삶 속에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보며 행동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조카나 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해봐야겠다.
점점 유튜브나 커뮤니티 등에서는 손해보지 않는 법과 배려보다는 자기를 위하는 부분이 강조돼서 보여준다.
이에 영향인지 아니면 마음이 좁은 건지 인간관계에서 내가 배려해 준 부분이나 상처받은 부분만 부각돼서 보인다. 그러면서 혼자 미워하다가 오랜만에 연락을 통해 나도 잘못한 부분이 있어 그들도 참았다는 것을 느끼곤 했던 적이 있다.
이에 내가 모르는 부분도 존재하기에 그들도 내가 모르는 무엇가를 감당하고 있음을 인정하며 나아가야 함을 깨달았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 스스로의 생각에 갇혀 누군가를 정죄하는 행동에 대해 경계를 해야 되는 거 같다. 나이가 들면 더 나은어른이 되어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스스로를 다듬지 않는다면은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음을 느낀다.
< 더 나은 삶 >
20대에는 인생의 가이드라인이 있었던 거 같다. 좋은 대학, 좋은 일자리, 집 등 나이대에 따라 그 가이드에 따라 서로 경쟁하거나 친구들에게 정보를 얻거나 그렇게 살았던 거 같다.
뭐 논할 나이는 아니라고 볼지는 모르지만 30대인 지금은 내가 잡은 나의 삶의 기준이 절대로 내가 바라는 멋진 어른으로 나를 데려줄 수 없음을 느꼈다. 나는 잘 나가는 삶에 대해서 고민하면 정진했었다. 주변에 사랑이 많은 환경은 디폴트로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잘 나가는 삶을 동경했지만 그분들의 몰락을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이 당연히 따라오는 환경이 아님을 느꼈다.
김장하 선생님의 삶을 통해 나은 가치를 위해 인내하며 나아가시는 태도를 통해 나는 생각이 잠겼었다.
아인슈타인이 매일 반복된 일상을 살면서 더 나은 환경을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이라고 했던가? 나의 지금 희생하고 싶지 않은 마음가짐은 잘 살아가고 싶은 나의 미래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거라는 것이 느껴진다.
가족들에게도 나의 희생을 알아주지 못하면은 화가 나는데 이분의 인내하는 태도를 통해 가정이 평화롭게 나아가는 모습을 보니 희생의 다음 단계를 보며 화가 나은 상황도 인내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모님께서 자신의 희생에 대해 보상심리로 모난 행동을 받았을 때 나의 감정을 떠올리니 정말 내가 인내하고 더해 위하는 마음이 없다면은 대가를 받는 위선일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도 들었다.
같은 사람이니 이분도 수많은 고민을 통해 나아갔을 거라 사려가 된다. 이에 내 내면에서 수없이 말하는 불가능한 삶이라는 말에 힘을 빼고 내 눈을 가능하는 발판 위에 나아가야 될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 나의 인생을 떠올렸을 때 후회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상황이 오기 위해서는 내가 잘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 살 수 있도록 정진을 하자. 책 제목 '줬으면 그만이지'처럼 나의 마음이 이렇다면은 나는 노년에 깊이 후회할만한 상황을 면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